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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행꿈꾸기

눈뜨면 없어라

미국에 온지 다섯 해 만이었다.

나는 그때 <중앙일보>의 샌프란시스코 지사장이 돼 있었다.
옆자리의 동료들이 눈치를 주는 것 따위는 아랑곳없이, 아주 게걸스럽게 일한 결과였다.
결혼생활 5년동안, 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은 그 절반쯤이었을 것이다.
그 절반의 절반 이상의 밤을, 나나 그녀 가운데 하나 혹은 둘 다 밤을 새워 일하거나 공부해야 했다.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.

모든 기쁨과 쾌락을 일단 유보해두고, 그것들은 나중에 더 크게 왕창 한꺼번에 누리기로 하고,
우리는 주말여행이나 영화구경이아 댄스파티나 쇼핑이나 피크닉을 극도로 절제했다.
그즈음의 그녀가 간혹 내게 말했었다.
"당신은 마치 행복해질까 봐 겁내는 사람 같아요."
그녀는 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.
"다섯 살 때였나 봐요. 어느 날 동네에서 놀고 있는데 피아노를 실은 트럭이 와서 우리 집 앞에 서는 거예요.난 지금도 그때의 흥분을 잊을 수가 없어요.
우리아빠가 바로 그 시절을 놓치고 몇 년 뒤에 피아노 백대를 사줬다고 해도 나한테 그런 감격을 느끼게 만들지는 못했을 거예요."

<중략>

애니웨이, 미국생활 5년만에 그녀는 변호사가 되었고 나는 신문사의 지사장이 되었다.
현지의 교포사회에서는 젊은 부부의 성공사례로 일컬어지기도 했다.
방 하나짜리 셋집에서 벗어나,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삼 층짜리 새 집을 지어 이사한 한달뒤에, 그녀와 나는 결혼생활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야만 했다.

바꾸어 말하자면 이혼에 성공했다.
그때 그때의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을 무시해 버린 대가로.

-'눈뜨면 없어라'중_지은이.김한길-

몇년 전, 너무나 인상깊게 읽었던 책이다.
그의 스물 아홉살 적  일기를 읽어가며,
때론 내 일기장이 아닌가 착각하기도 했다.
다시한번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던, 그런 책이었다.나에겐.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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